인간은 틀에 맞춰 제작되어 주어진 작업을 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방으로 뻗어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오직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만 마음껏 숨 쉴 수 있다. — J. S. Mill, <자유론>자유론>
대학의 생명은 자유입니다. 저는 대학이 다양성, 개방성, 자발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활력 넘치는 학문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서울대학교는 ‘규정집’에 갇혀있습니다. 2011년 법인화 이후에도 불신에 뿌리를 둔 획일적이고 관료적인 규제와 관행은 여전히 우리를 속박하고 있습니다. 종합화 50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학제적 교육과 연구의 시너지 창출이라는 목표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 생산과 전달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지금,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서울대학교의 대전환을 엄숙히 천명하고, 명실상부한 혁신을 주도해야 합니다. 관료적 경직성으로부터 벗어나 자발적 유연성을 확보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창의적 융합 교육과 연구의 제도적 기반을 재구축하며, 교육과 연구의 현장을 지원하는 효율적 행정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위기를 넘어 대학과 사회가 통합과 발전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야 합니다.
자유롭고 역동적인 교육·연구 생태계
저는 서울대를 둘러싼 법령과 제도, 내부의 운영방식과 관행이라는 두 영역 모두에서 동시에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법과 제도의 틀을 바꾸고, 활력을 위축시키는 규제와 관행을 걷어내야 합니다. 대학이 스스로 선택할 자유와 권한을 누릴 수 있어야 미래지향적으로 교육하고 연구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융합 교육과 연구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자발성이 존중되고 유연하게 지원받을 수 있는 자율생태계에서만 가능합니다. 바로 이러한 활력 있는 학문공동체를 일구는 것이 제가 앞장서고자 하는 대전환의 목표입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개방적 플랫폼
저는 서울대가 세계 지식생태계 속의 중요한 허브가 되려면, 서울대만의 우월성을 지닌 교육·연구 플랫폼들을 내부에 많이 육성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해야 세계 인재들이 서울대를 찾아 모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개방적 파트너십을 정부, 기업, 타 대학들과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특히 첨단과학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활발한 산학협력은 도전적 연구뿐만 아니라, 창의적 교육을 위한 혁신의 양분을 제공할 것입니다.
대전환을 이루는 리더십
저는 지난 40여 년 동안 정치사상을 공부해 왔습니다. 교육자로서 27년간 서울대의 교육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연구자로서 한국정치사상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등의 활동을 통해 학계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정치사상은 현실의 복잡한 갈등구조와 난해한 딜레마의 본질을 파악하여 공동체를 위한 보다 나은 선택을 이끄는 실천적 학문입니다. 이러한 훈련은 제가 법인화준비위원회에 참여하고 대학신문사 주간으로 활동하면서 서울대의 전체적인 문제 구조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사회과학대학장으로서의 행정경험과 발전기금 모금활동,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로부터 얻은 귀중한 배움은 제가 서울대학교가 처한 현실을 더욱 잘 파악하고, 우리 대학이 역동성을 되찾을 방안들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창립과정을 주도한 서울대 싱크탱크 ‘국가미래전략원’은 정부와 사회, 산업계를 연결하는 개방적, 초학제적 플랫폼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이러한 설계는 융복합적 플랫폼이 연구뿐만 아니라 교육, 국가와 인류에 대한 기여를 혁신적으로 증진할 수 있다는 저의 판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발전계획서에서 강조하는 ‘전공을 넘나드는 교육’, ‘학부기초대학’, ‘SNU Commons’ 등의 약속도 저의 이러한 핵심 지향을 담고 있습니다.
실천 의지와 용기
처칠(W. Churchill)이 말했듯이, “성공은 영원하지 않고 실패는 절망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용기’입니다.” 혼자 하려면 불가능할지 몰라도,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치열하게 소통하며 함께 용기를 발휘한다면, 얼마든지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감히 앞장서고자 합니다. 자유와 신뢰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2022.8.16.유 홍 림